계속 하다간 언젠가.. 괜찮아 지려나 모르겠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오해는 풀고, 잘못은 사과하고.
오해는 풀고, 잘못은 사과하고.
가끔은 억울하기도 하고 반발심도 들지만
살면서 사람이 이렇게까지 무서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제까지 어딘가에서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오늘도 어제와 똑같이 웃으면서.
"와, 너 원래 그런놈이라면서."
"그러게 잘못을 왜해 병신아."
슬며시 걸어 들어오더니
모양도 형체도 없는 칼을 쥐고
대수롭지 않게 쑤시고 간다.
애초에 입을 함부로 놀렸기 때문에,
그런 새끼이기 때문에 이건 분명히 정당한 폭력이다.
죄를 짓고 나선 내가 할 수 있는게 생각보다 없었고,
앞으로도 없기 때문에 남은 길은 하나 뿐일 것 같다.
오해는 풀고, 잘못은 사과하고.
오해는 풀고, 잘못은 사과하고.
2016년 7월 22일 금요일
2016년 7월 20일 수요일
이번 논란으로 배운 점
<인생의_참교육.jpg>
근데 이게 참 갈수록 문제가 되는 게 뭐냐면...
전혀 하지도 않았던 말이 막 나옴.
졸지에 지금까지 메갈 지지했다가 취소한 변절자가 됨.
본인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발언한다'는 모순형태가 그대로 되풀이 되고 있다는 점..
근데 솔직히 나도 잘못한게 워낙에 컸고, 원인제공을 한게 되니까 한동안은 계속 해명하면서 추궁받을거 받고, 지적받을 건 받겠는데, [경솔한 판단에 대한 사과]를 처음 부터 끝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각에선 "정황상 빼박 태세전환이지", "살려고 발악한다"는 이야기는 이어진다.
뭐 어차피 안믿기니까 내가봐도 졸렬하고 비겁하다 한거고 그래서 제대로 밝힐 수 있게 거짓말판독기 같은거 대여방법 있나 찾아보고 있는건데.
밝혀지지 않는 이상 [무빙회피/ 손절매/ 우디르] 수식어는 계속 따라온다는 점.
말 그대로 비하나 조롱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받고 있다.
애초에 하지도 않았던 행위를 뜻하는 별명이 붙여진다..ㅋㅋㅋㅋㅋㅋㅋ
「진짜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곧,「확인할 수 없으니 진짜인 걸로 의심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방식으로 옮겨가는게 자연스러운 건지, 또한 그런게 정말로 정당하고 괜찮은 건지, 지금의 내 입장에서 전혀 물어볼 수도, 의문을 가질 자격조차도 생기지 못한다는 것.
특히나 질 나쁘기로 소문난 메갈에 엮였으니 안그래도 병신같던 놈이 더욱 특별취급해도 되는 병신이 된 느낌임.
인터넷 참 오래하면서 그 많은 흔적은 다 어디로 갔는지 찾아서 사상검증 해줄 사람도 안보이고.
무엇보다 진심을 보여주니 그래도 믿어주고 알아주는 사람들이 거기엔 있었다는 것..
그게 정말 눈물나게 고마운 일이고 나같은 듣보잡 새끼한텐 과분한 일이기도 했지만.
다른 작가나 유명인에 비해서 보자면, 공인으로서의 배울 점을 인식했다기 보다는 이번 사태는 뭐랄까.거기에 묻혀서 공인으로 '만들어진' 느낌이 너무 컸다.
딱히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없고 그냥 적은 사람들끼리 소소하게 터놓고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방송에서 틈만 나면 이야기하는데, 이젠 그럴 수도 없게 된 것 같아서 괜시리 찝찝하고...
연재처, 외주처 연락하면서 사과하고 '저 다시 쓸지 좀 신중하게 생각해보시라'는 말까지 하고 나서 느낌이 되게 애매하더라.
잘 모르겠다. '논란을 만들어서 미안한 마음'이 계속해서 '정당하게 깔 수 있는 개새끼'가 된 그 정당함을 납득 못하는 건지, 아니면 좀 까이는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서 까달라고 하고싶은 건지.
2016년 7월 3일 일요일
2016년 6월 21일 화요일
2016년 5월 3일 화요일
BIFF 탄압... 국제적으로 퍼져나가는 병크
문화예술에 색을 씌우고 이념을 덧대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독재정권 아래에서 흔히 벌어져왔던 일이었는데, 에둘러 말하는 비아냥의 논조가 아니라 지금 BIFF에 대해 압박을 가하고 있는 부산시의 행태가 그렇다.
솔직히 나도 부산사람으로 이런거 보고있으면 개쪽팔린다.
예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도 우리지역이 이런 짓을 한다는 것도 쪽팔리는 일이고
이런 양반들이 부산시장으로 나와서 '우리가 지원금 절반 떼주니 관리하는게 맞지 않냐'같은 스탠스를 취한다는 자체가 이미 이양반들은 문화예술이 뭔지도 개뿔 모르면서 돈벌이 수단으로만 이 사안을 바라보고 있다는 거기 때문에 더 쪽팔려야 하는 일이다.
표현의 자유가 이념론에 부딪히면 자연스럽게 수그러드는 걸 당연시하는 일부 인간들 사이에서는 마치 "뭐 그럴수도 있지"정도로 어째저째 국내 언론을 동원해서 논리를 형성시킬 수 있겠지만.. 국제적으로는 이미 이런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문화예술인, 영화인들이 보기에 '있을 수가 없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이해가 되지 않는' 차원의 헤프닝인 거다.
'정치적인 중립을 훼손한다'는 시장님의 발언 자체가 얼마나 궤변인지 알수가 있는 대목인데...
사람의 행동과 표현의 자유에서 정치적인 이념을 떼고 표현하라는 것 만큼 주객전도의 어폐는 없다. 앞서 썼던 글에서도 항상 써갈겼던 거지만 집단지성을 가진 개인의 행위에 정치적이지 않은 행위란 존재하지 않고, 작품의 정치적인 판단여부는 관객의 판단이다. 심지어 어떤 작품이 정치적인 이유로 비난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에 의해 타격을 받는 것은 감독의 커리어이지 영화제의 품격이 아니다.
근대적 예술 체제가 만들어온 양식으로 생긴 편견으로 인해 마치 어설프게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분류시키듯이 [예술]과 [비예술]의 영역을 찢어내는 사람들의 가치관념에서는 마치 '예술은 정치적이지 않고 속세를 벗어난 초월적인 감각에서 일어나는 형질의 것'인양 오해하기도 하지만, 그런 식의 카테고리화 자체가 이미 넌센스라는 걸 먼저 자칭 대중과 자칭 일반인들에게 말을 해야겠다.
'표현의 자유'를 최근 들어서는 정보통신법 위반 등으로 법정에 끌려온 2~30대 범죄자들의 변명으로 훨씬 더 자주 접해본 단어라서 얼마나 지금의 사람들에게 이 가치의 중요성을 설득시킬 수 있을 지도 참 걱정인데, 이미 헌법에서 보장된 가치를 대체 얼마나 대단한 근거를 가졌기에 훼방을 놓을 수 있다는 걸까.
병신짓은 지방정부가 하는데 왜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인가.
2016년 4월 12일 화요일
애니메이션 작품속의 로봇윤리
이전까지 AI로봇에 관한 이야기는 상당히 진행이 되어있었음에도 크게 와닿지는 않었는데, 최근들어서 알파고가 다시 그 여세를 몰아치며 '과학은 이정도로 눈앞에 와 있다'는 메세지를 대중에게 또 한번 전달했다.
로봇 공학자들에게는 천천히 진전되고 있었던 나름 현실적인 이야기겠지만 나같은 과알못인 애니 학도는 과거에 나왔던 로봇과 관련된 미디어 작품들을 되새겨본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인 '에르고 프록시'는 매우 강렬한 메시지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풀어내는 방식에서 솔직히 많은 아쉬움을 보였던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높은 평을 주는 이유는 '요즘 시기에 이정도로 철학적인 담론을 담아내려는 애니메이션 작품이 그동안 없었기 때문'.그리고 앞으로도 없게 되었다.
너무 담아낼 게 많은 주제들이 엉켜서 복선도 엉성하게 깔리다가 결국 화음을 잘 내지는 못했지만, 작품 중간중간 등장하는 소름끼칠 정도의 연출력, 그리고 데카르트 철학 서적들을 갈아넣었나 싶을 정도로(...) 깨알같이 숨어있는 흔적들(이원론, 인식의 불완전성, 완전한 신의 존재, 거짓말에 의해 창조된 허울적 세상,자신의 딸을 닮은 자동인형)은 이들이 '실제 전달하고픈 메시지'를 넌지시나마 느낄 수는 있었다. (저주받은 명작이라 불리우는 것들은 이유가 있다.)
여기서도 로봇윤리에 대한 부분은 등장하는데, 인간을 존재이유(Raison d'être)로서 바라보는 AI로봇들, 그리고 그 로봇들이 자아를 지니고 스스로 성찰을 하기 시작하면서 변화하는 과정들을 흥미로운 연출로 그려 나갔다.
결론적으로 이런 작품들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담론들을 우리에게 친숙한 매체를 통해서 진지하게 사유할 수 있도록 계기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어떤 논제이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는 준비가 필요하며 정서적인 경험이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거다. (바이센테니얼 맨을 보면서 펑펑 울었던 경험이...)
다소 포괄적인 이야기로 바뀌었는데, 좋든 싫든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있고 대중으로서의 우리가 인지하는 수준은 아직까지는 단편적이다. 이런 작품들을 다시 보면서 이전의 우리들이 어떤 관점을 지녀왔고 어떤 문제나 해결책이 있을 지 곰곰히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시간이 있을 때(...)
로봇 공학자들에게는 천천히 진전되고 있었던 나름 현실적인 이야기겠지만 나같은 과알못인 애니 학도는 과거에 나왔던 로봇과 관련된 미디어 작품들을 되새겨본다.
<SF에서 빠질수가 없는 전설적인 영화, 메트로폴리스>
실제 로봇이 중심이(긴 한데)라기 보다는 계급사회와 노동계층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한 편으로는 디스토피아적인 이미지를 상당히 강력한 영상미로 전달한다. 로봇을 통해 인간들을 지배하는 어두운 미래, 모두가 밝을 줄 알았던 미래의 문명이 자본가와 노동계층으로 착취구조를 형성하며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어 버린 세계.
이 작품은 후에 터미네이터, 매트릭스, 블레이드 러너 등의 영화들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특히나 작중 프레더의 대사가 눈물겹다. -아버지, 10시간의 노동은 너무 과합니다!-....)
<데즈카 오사무의 메트로폴리스와 그것을 리메이크한 동명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이런 시대적 담론은 만화나 애니메이션 계에도 여러 영향을 끼치는데, 대표적으로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가 있고, 또 위의 영화의 이야기를 재해석한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이 있다. -데즈카 오사무는 일반적으로는 [아톰의 아버지]나 [일본식 산업 애니메이션에 기여한 사람]으로 만 알려져 있지만 작가로서 장르의 구분이 없는 도전의식, 디테일한 작품 묘사, 굵직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능력만 하더라도 만화가 전체를 놓고 봐도 손에 꼽을 정도의 인물이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데즈카 오사무의 미래적 관점을 시각적으로 많은 부분 내포하고 있지만 해석에 있어서는 아쉽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물론 영상미는 뛰어나다. 보고있으면 작화가들 죽어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일단 로봇에 관한 작품들은 단순히 로봇이 인간을 공격해오는 터미네이터 같은 류의 액션 스릴러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로봇을 타자화하는데 익숙한 우리의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이미 실제로 일상 속에 깊숙히 들어와 버린 지금은 -심지어 동물 형태로 만들어진 로봇을 발로 차는 걸 보며 동물보호협회에서 이의를 제기할 정도로- 인간이 로봇을 어떤 인격체로서 대하려고 하는 새로운 도덕성의 관점인 '로봇 윤리'의 필요성에 관한 논설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위의 작품들이 끊임없이 던지는 주제이기도 하다.
켄이치에 있어서 티마, 그리고 마리아(헬). 또는 'A.I'의 데이비드나 '바이센테니얼 맨'의 앤드류는 어떠한가.
사이언스 픽션에서 로봇이 꿈꾸는 인간다움이란 갈망은 자연스럽게 이미 인간으로 있는 우리와 동화되면서 '인간다움이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같은 스스로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과 고뇌로 치환해간다.
<지금은 파산한 manglobe도 초창기에는 상당히 작품성있는-적어도 시도는 하는-작품을 선보이려는 노력을 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인 '에르고 프록시'는 매우 강렬한 메시지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풀어내는 방식에서 솔직히 많은 아쉬움을 보였던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높은 평을 주는 이유는 '요즘 시기에 이정도로 철학적인 담론을 담아내려는 애니메이션 작품이 그동안 없었기 때문'.
너무 담아낼 게 많은 주제들이 엉켜서 복선도 엉성하게 깔리다가 결국 화음을 잘 내지는 못했지만, 작품 중간중간 등장하는 소름끼칠 정도의 연출력, 그리고 데카르트 철학 서적들을 갈아넣었나 싶을 정도로(...) 깨알같이 숨어있는 흔적들(이원론, 인식의 불완전성, 완전한 신의 존재, 거짓말에 의해 창조된 허울적 세상,
여기서도 로봇윤리에 대한 부분은 등장하는데, 인간을 존재이유(Raison d'être)로서 바라보는 AI로봇들, 그리고 그 로봇들이 자아를 지니고 스스로 성찰을 하기 시작하면서 변화하는 과정들을 흥미로운 연출로 그려 나갔다.
<자아를 지닌 로봇은 자기의 존재이유를 너무 사랑한 결과 광기에 사로잡힌다.
스스로의 성찰, '코기토'는 어떤 의심도 없는 사유이자 진리이면서도 항상 광기의 위협 속에서 공존하고 있다. 존재이유를 잃고 흔들리는 코기토는 결국 광기에 복종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런 작품들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담론들을 우리에게 친숙한 매체를 통해서 진지하게 사유할 수 있도록 계기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어떤 논제이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는 준비가 필요하며 정서적인 경험이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거다. (바이센테니얼 맨을 보면서 펑펑 울었던 경험이...)
다소 포괄적인 이야기로 바뀌었는데, 좋든 싫든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있고 대중으로서의 우리가 인지하는 수준은 아직까지는 단편적이다. 이런 작품들을 다시 보면서 이전의 우리들이 어떤 관점을 지녀왔고 어떤 문제나 해결책이 있을 지 곰곰히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시간이 있을 때(...)
2016년 4월 11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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