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공학자들에게는 천천히 진전되고 있었던 나름 현실적인 이야기겠지만 나같은 과알못인 애니 학도는 과거에 나왔던 로봇과 관련된 미디어 작품들을 되새겨본다.
<SF에서 빠질수가 없는 전설적인 영화, 메트로폴리스>
실제 로봇이 중심이(긴 한데)라기 보다는 계급사회와 노동계층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한 편으로는 디스토피아적인 이미지를 상당히 강력한 영상미로 전달한다. 로봇을 통해 인간들을 지배하는 어두운 미래, 모두가 밝을 줄 알았던 미래의 문명이 자본가와 노동계층으로 착취구조를 형성하며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어 버린 세계.
이 작품은 후에 터미네이터, 매트릭스, 블레이드 러너 등의 영화들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특히나 작중 프레더의 대사가 눈물겹다. -아버지, 10시간의 노동은 너무 과합니다!-....)
<데즈카 오사무의 메트로폴리스와 그것을 리메이크한 동명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이런 시대적 담론은 만화나 애니메이션 계에도 여러 영향을 끼치는데, 대표적으로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가 있고, 또 위의 영화의 이야기를 재해석한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이 있다. -데즈카 오사무는 일반적으로는 [아톰의 아버지]나 [일본식 산업 애니메이션에 기여한 사람]으로 만 알려져 있지만 작가로서 장르의 구분이 없는 도전의식, 디테일한 작품 묘사, 굵직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능력만 하더라도 만화가 전체를 놓고 봐도 손에 꼽을 정도의 인물이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데즈카 오사무의 미래적 관점을 시각적으로 많은 부분 내포하고 있지만 해석에 있어서는 아쉽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물론 영상미는 뛰어나다. 보고있으면 작화가들 죽어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일단 로봇에 관한 작품들은 단순히 로봇이 인간을 공격해오는 터미네이터 같은 류의 액션 스릴러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로봇을 타자화하는데 익숙한 우리의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이미 실제로 일상 속에 깊숙히 들어와 버린 지금은 -심지어 동물 형태로 만들어진 로봇을 발로 차는 걸 보며 동물보호협회에서 이의를 제기할 정도로- 인간이 로봇을 어떤 인격체로서 대하려고 하는 새로운 도덕성의 관점인 '로봇 윤리'의 필요성에 관한 논설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위의 작품들이 끊임없이 던지는 주제이기도 하다.
켄이치에 있어서 티마, 그리고 마리아(헬). 또는 'A.I'의 데이비드나 '바이센테니얼 맨'의 앤드류는 어떠한가.
사이언스 픽션에서 로봇이 꿈꾸는 인간다움이란 갈망은 자연스럽게 이미 인간으로 있는 우리와 동화되면서 '인간다움이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같은 스스로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과 고뇌로 치환해간다.
<지금은 파산한 manglobe도 초창기에는 상당히 작품성있는-적어도 시도는 하는-작품을 선보이려는 노력을 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인 '에르고 프록시'는 매우 강렬한 메시지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풀어내는 방식에서 솔직히 많은 아쉬움을 보였던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높은 평을 주는 이유는 '요즘 시기에 이정도로 철학적인 담론을 담아내려는 애니메이션 작품이 그동안 없었기 때문'.
너무 담아낼 게 많은 주제들이 엉켜서 복선도 엉성하게 깔리다가 결국 화음을 잘 내지는 못했지만, 작품 중간중간 등장하는 소름끼칠 정도의 연출력, 그리고 데카르트 철학 서적들을 갈아넣었나 싶을 정도로(...) 깨알같이 숨어있는 흔적들(이원론, 인식의 불완전성, 완전한 신의 존재, 거짓말에 의해 창조된 허울적 세상,
여기서도 로봇윤리에 대한 부분은 등장하는데, 인간을 존재이유(Raison d'être)로서 바라보는 AI로봇들, 그리고 그 로봇들이 자아를 지니고 스스로 성찰을 하기 시작하면서 변화하는 과정들을 흥미로운 연출로 그려 나갔다.
<자아를 지닌 로봇은 자기의 존재이유를 너무 사랑한 결과 광기에 사로잡힌다.
스스로의 성찰, '코기토'는 어떤 의심도 없는 사유이자 진리이면서도 항상 광기의 위협 속에서 공존하고 있다. 존재이유를 잃고 흔들리는 코기토는 결국 광기에 복종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런 작품들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담론들을 우리에게 친숙한 매체를 통해서 진지하게 사유할 수 있도록 계기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어떤 논제이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는 준비가 필요하며 정서적인 경험이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거다. (바이센테니얼 맨을 보면서 펑펑 울었던 경험이...)
다소 포괄적인 이야기로 바뀌었는데, 좋든 싫든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있고 대중으로서의 우리가 인지하는 수준은 아직까지는 단편적이다. 이런 작품들을 다시 보면서 이전의 우리들이 어떤 관점을 지녀왔고 어떤 문제나 해결책이 있을 지 곰곰히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시간이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