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4일 금요일
이세계 판타지
최근의 이세계물이 폭발적으로 많아지는 이유는 (이세계물은 이전에도 간간히 있어왔지만) 바꿀 수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젊은 층의 좌절감이 녹아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 정도로 많아져서 이젠 하나의 장르를 이룬다.
요즘의 이세계물로 분류되는 것들은 단순 판타지 세계에 주인공이 뛰어드는 것처럼 입구가 단순히 우물이나 책 속이 아니라,
[트럭에 치인다]던지
[머리를 맞는다]던지,
[옥상에서 떨어진다]던지 하는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직접적인 충격요법으로 이세계로 떠난다. 아예 대놓고 '전생'이란 용어를 써서 일단 한 번 죽는 것으로 시작하기도 한다.
이런 클리셰 뿐 아니라 이세계로 소환된 주인공은 처음부터 강력한 능력이나 엄청난 성장력을 가지고 시작하기에, 어떨 땐 '이놈에겐 갈등이란 게 있긴 한가'라고 느껴질 정도다.
그만큼 주인공에게 감정이입된 독자들은 (작가도 포함해서) 현 상황에서 압박을 더 이상 받고싶지 않다는 것이 읽으면서도 절절하게 느껴지는 수준에 이르렀다.
옛날 소년만화에서 보던 '고통을 수반하는 좌절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주인공'은 더는 없다. 뭐든 호쾌하게 물리치고 가볍게 이겨서 주위가 놀라 떠받들어 주는 식의 인물이 되고, 아예 여기서 무언가를 깨닫거나 얻어서 돌아오는 일 없이 그 세계에 쭉 눌러사는 엔딩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사람들이 소설이나 만화에 감정이입을 해서 치유를 받는다고는 하지만, 이건 뭔가 다른 종류의 치유방법 이거나, 혹은 이걸 치유라고 부를 수 있는가도 나는 의문이다.
현실에서 튕겨져나간 주인공이 노력없이 얻은 힘과 용기가 가져올 수 있는 교훈은 뭘까. 독자들은 이세계물을 통해 과연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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